"If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 Korea should have them all ."
                                                                       -Ruby Kendric -

 "나에게 천번의 삶이 있다면, 그 삶을 한국을 위해 바치겠다"     -루비 켄드릭


 24세 젊은 나이로 조선에 와서 불과 8개월만에 순교한 루비 켄드릭(Miss Ruby Rachael Kendrick, 1883~1908) 양의 묘비다.  미국 텍사스 남감리교회의 독실한 가정에서 태어난 루비 켄드릭은 꿈 많은 소녀 시절부터 불신자들에 대한 구령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해외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텍사스 여자고등성경학교에 진학했다. 1905년6월에 졸업한 그녀는 선교사 파송 연령 제한에 걸리자 교사로 1년, 대학 학부 과정 1년을 수학하면서 해외 선교를 위해 착실히 준비했다. 그녀는 이 기간에 택사스 엡윗청년회 대표가 되었고, 1907년9월 에 남감리교회 여자외국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조선으로 달려왔다. 텍사스에서 엡윗청년회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던 중 조선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가득 담긴 그녀의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만일 내게 일천 생명이 있다면 그것을 모두 조선에 주겠노라"라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는 그곳의 수많은 사람의 심령을 감동시켰다. 그런데 엡윗 청년회 컨퍼런스 이튿날에 조선으로부터 갑자기 비보가 날아들었다.

 루비 켄드릭이 세상을 떠났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녀는 1908년6월9일에 맹장염 에 걸려 수술을 받았지만, 열흘 후인 그달 19일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조선 선 교의 꿈을 이루지도 못한 채 25세의 꽃다운 나이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주변 사람들에 게 이런 말을 남겼다.

 

"만일 내가 죽으면 텍사스 청년들에게 가서 열 명씩, 스무 명씩, 오십 명씩 조선으로 오라고 일러 주십시오." 그녀의 말은 텍사스 엡윗청년회 컨퍼런스 에 전달되었고 그 자리에 참석한 수많은 젊은이의 가슴에 선교의 불씨를 지폈다. 그들 중 20여 명이 은둔의 나라 조선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텍사스 엡윗청년회는 해마다 헌 금을 모아 조선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의 사례비를 지원했다.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교회의 부흥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헌신과 순교의 터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제 우리 차례다. '복음에 빚진 자의 사명',그 것은 값싼 구호로 끝나지 않고 대가를 수반한 실천적 행동이어야 한다.


-----------------------------------------------------------------------------------------------------------

벌써 몇개월이나 지나가 버렸네... 처음으로 양화진이란 곳에가서 영상도보고 외국인선교사님들의 묘역도 돌아보고, 사진도 찍어놨는데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지금도 카메라에 있을텐데..ㅡㅡ;

이글도 몇주전에 작성해놨는데(조사하고, 쓰다중간에 멈칫...) 오늘도 우연히 보게되서 짧게 나마 작성한다.


김학관 선교사님과 길선생님을 통해서 몇번이나 들었다. 이런선교사님이 있었다고, 거기 갔을때 궁금해서 물어보니... 처음에 거기 양화진을 관리 하시는 100주년기념교회분들도 잘 몰라서 주위아는분들에게 물어 물어 찾아봤던거 같다.


처음에는 너무 대단해서...신기한 느낌 이었다. 아마도 성령님의 주신 마음이겠지...그리고 편지를 통해 고백했겠지...


"하나님께서 조선을 이렇게 사랑하사..."란 어구가 기념관에 크게 표시되어 있었는데...함께간 초등부 아이들도 이것만큼은 기억하더라.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한국을 위해 헌신했었던, 복음전했던 선교사님들의 그 마음...

그 믿음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겠지...


나의 삶에서도 이런 소망들, 기대들이 바람들이 살아졌으면 좋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