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레저] 남산 얼마나 아십니까

오솔길 막은 뒤 솔숲 시들
야생동물 대신 고양이 활개

서울타워

익숙한 것들에 대해 오히려 무지한 경우가 있다. 서울시민들에겐 남산이 그렇다. 언제고 고개만 들면 보이지만, 남산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위치 서울 중구와 용산구의 경계, 높이 262m, 옛 이름 목멱산…. 이런 판에 박힌 정보들일랑 미뤄두고, 진짜 남산 얘기를 모아봤다. 함께 떠나보자, '남산의 재발견'!

◆ 남산 위의 저 소나무~=남산 하면 역시 소나무다. 애국가에도 나오지 않는가. 그러나 막상 남산 소나무는 그간 무관심 속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시작은 서울시가 1968년부터 시작한 소나무 숲 출입 금지 조치. '자연보호'를 내세운 조치였지만, 소나무에겐 오히려 해가 됐다. 소나무 씨는 맨땅에 떨어져야 싹을 틔우는데, 인적이 끊기며 낙엽이 쌓여 번식에 문제가 생긴 것. 게다가 이런 틈을 노려(?) 귀화식물들이 번창, 소나무들은 힘들게 싹을 틔워도 제대로 자랄 수 없었다. 지난해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남산 소나무 10그루 중 4그루가 생장저해를 겪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을 정도. 다행히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활터인 석호정 주변의 소나무 숲을 개방했다. 올해에도 추가 개방이 있을 예정. 또 남산 소나무 씨앗을 채취, 묘목도 기르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2년 안에 2만5000 그루의 건강한 소나무가 '선배'들의 뒤를 잇는다.

◆ 낭만고양이, 남산 접수하다=남산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꼭대기에 군림하는 동물은 고양이다. 호랑이가 뛰놀았다는 산에 고양이가 왕이라니 우습지만, 고양이에 의한 피해는 웃고 넘길 수준을 넘는다. 99년 서울시는 남산에 고라니 4마리를 방사했다. 몸길이가 1m까지 자라는 사슴과 동물. 그러나 이들은 한 해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범인은 고양이들. 고라니의 서식지 근처에는 고양이의 습격 흔적이 발견됐다. 고라니가 이러니 다람쥐.청솔모.꿩 같은 동물들은 고스란히 고양이의 먹이가 돼왔다. 남산공원관리사무소 측도 "야생동물이 3~4년 전만 해도 꽤 많았는데, 몇 년 새 부쩍 줄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생태계 복원 노력을 게을리할 수도 없는 일. 서울시는 조만간 또 한차례 야생동물을 남산에 풀어줄 계획이다. 그러나 또 고양이 좋은 일만 되는 게 아닐까 염려하고 있다.


(위 사진부터) 와룡묘, 봉수대, 포토 아일랜드

◆ 남산엔 제갈공명도 산다=남산 북측순환로엔 기이한 한옥 한 채가 있다. 가파른 계단에 올라선 대문에는 '와룡묘'라고 적힌 현판이 또렷하다. '와룡'은 중국 고대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최고의 전략가 제갈공명의 별칭. 놀랍게도 이곳은 공명을 모신 사당이다. 본당의 문을 열어 젖히면 소설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공명의 목상이 깃털로 만든 부채를 들고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언제 그리고 왜 조선의 수도 한가운데 공명을 기리는 사당이 세워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 고종의 귀비 엄씨가 세웠다는 설도 있고, 철종 13년(1862년)에 공명을 추앙하는 선비들이 세웠다는 설도 있다. 확실한 것은 지금도 해마다 음력 7월이면 제사를 지낸다는 것. 3대조 때부터 이곳의 관리해왔다는 안상필(73)옹이 현재 제관이다. 사당 별채에서 사는 그는 남산공원의 '나홀로 주민'이기도 하다.

◆ 전설의 고향, 남산=남산엔 '옛날 이야기'도 많다. 그 중 하나가 '강감찬 설화'. 강감찬 장군이 한양판관으로 부임해보니 집집마다 처마에서부터 땅까지 그물을 늘어뜨리고 있었다고 한다. 장군이 이유를 물으니, 백성들이 "호랑이를 막으려고 그물을 쳐놨다"고 답했다. 이에 장군은 남산 잠두에 있던 노승을 끌고 와 크게 꾸짖었다고 한다. 이후 며칠 동안 남산에선 호랑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때부터 사람을 물어가는 일이 사라졌다고 한다. 백성들이 강 장군에게 연유를 물으니, 장군은 이렇게 답했단다. "노승은 사람으로 둔갑한 호랑이의 우두머리였다. 내가 그에게 무리를 이끌고 떠날 것을 명했다." 이 설화에 등장하는 남산 잠두는 누에 머리를 닮았다는 식물원 부근 봉우리다. 이 밖에 '지네귀신 설화''회현동 은행나무 설화' 등 재미있는 얘기들을 남산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다.


*** 울타리 걷고 '시민 곁으로'

남산공원이 서울 시민들에게 한발 더 다가선다.

서울시는 지난 7일 남산공원 도로변 철제 울타리를 오는 6월 말까지 철거한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철거되는 철제 울타리는 전체 25.9㎞ 중 절반이 넘는 14㎞. 낭떠러지나 배수로 주변 등 등산객들의 추락사고 위험이 있는 구역을 빼곤 거의 대부분의 울타리가 사라지는 셈이다.

남산에 철제 울타리가 들어선 것은 1968년. 당시 서울시는 전체 면적 89만 평 가운데 83%의 임야에 일반 시민들이 출입할 수 없도록 울타리를 둘렀다. 그러나 이후 울타리는 여러 차례 덧칠만 됐을 뿐, 제대로 보수가 되지 않아 흉물스럽게 변해왔다. 야생동물의 이동이나 식물의 자연번식을 막는 역효과를 낳는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김을진 남산공원관리사업소장은 "미 철거 구간의 울타리도 환경친화적인 디자인과 소재로 바꿔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는 국립극장에서 식물원에 이르는 남산 남측순환로의 일반 차량 진입도 오는 5월부터 통제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3.1㎞의 또 하나의 쾌적한 산책로가 조성된다.

*** 식물원 자리는 한때 스키장

600년 넘게 수도 '한양'을 지켜온 남산. 이곳에선 역사적인 사건들도 많이 벌어졌다.

'남산 스키장'을 아시나요=1884년 개항 이후 한양에도 일본인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이 터전을 잡은 곳이 남산. 일제는 한일병합 이후 이들이 참배할 수 있는 신궁을 남산에 지었다. 신궁은 현재 남산 식물원 자리에 지어졌고, 남대문에서 이곳까지 긴 계단이 들어섰다. 그러나 일제가 패망하며 신궁은 철거됐고, 계단은 스키장으로 변신했다. 물론 스키장이라고 해서 리프트 같은 시설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눈이 많이 내리면, 사람들이 대나무 스키로 재미를 본 정도. 그래도 당시엔 지나는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 놀라운 구경거리였다.

여의도? 아니 남산!=지금 여의도에 있는 국회는 사실 남산에 들어설 뻔했다. 건국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새 국회 건물을 지으려던 정부가 다양한 검토 끝에 남산을 후보지로 결정했던 것. 1958년에는 디자인을 공모했고, 여기서 당선된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에 따라 터를 다지는 공사도 진행됐다. 그러나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은 갑자기 붕괴됐고, 이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이 반대하는 바람에 국회는 들어서지 못했다. 현재 어린이공원.백범광장.식물원 등으로 조성된 계단형 공원부지는 육군 공병대가 다져놓은 국회 자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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